아티스트 해설

Holly Cole

방살미 2018. 6. 22. 07:59





Holly Cole,

캐나다 출신의 홀리 콜 (Holly Cole) 은 재즈와 팝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자기 영역을 구축해 온 여성 재즈싱어이다. 저음에서 고음의 성부까지 유유히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그녀의 창법은 흡사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와도 유사하나, 스탠다드 재즈만을 고집하지 않고 'Calling You' 같은 팝 발라드 넘버들도 그녀의 중요 레퍼토리로 삼았다. 그런 그녀의 음악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특히 일본에서 그녀의 인기는 매우 특별하다.

홀리 콜은 1963년 캐나다의 할리팩스 (Halifax) 시에서 방송국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에 있어서 음악은 마치 일상과도 같은 것이어서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고 자라났는데, 정작 홀리 콜은 성장해가면서 점점 거칠고 험악한 말괄량이 소녀로 변해갔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생활이 변하게 된 것은 부모가 이혼하던 14살부터였다. 항상 음악이 흘러넘치던 행복한 가정이 깨지자, 그녀는 점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 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17살이 되던 해,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던 오빠를 찾아가면서 그녀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라 본 (Sarah Vaughan) 같은 재즈 싱어들의 노래를 듣게 되었고,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곳에 머무는 동안 오빠와 함께 보컬수업을 받았다. 그녀의 오빠는 전후 50년대 재즈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와 함께 하면서 들었던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등의 재즈곡들은 그녀의 깊고 풍부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음악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1983년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토론토로 간 그녀는 그곳에서 보컬수업을 받음과 동시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워나갔다. 점차 그 지역을 중심으로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할 무렵인 1985년 피아니스트 아론 데이비스 (Aaron Davis) 의 권유로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필치 (David Piltch) 가 여기에 참여하면서 '홀리 콜 트리오 (Holly Cole Trio)' 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수년간 토론토를 중심으로 입지를 다져간 그룹은 1990년 첫 앨범 [Blame It on My Youth]를 발표하였다. 'If I Were A Bell', 'Honeysuckle Rose' 같은 스탠더드 팝의 고전들을 감성적인 팝 발라드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앨범은 재즈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론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 발표한 2집 [Don't Smoke In Bed]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특이 이 앨범은 일본에서만 1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고 일본에서의 각종 재즈 시상식을 휩쓸면서 일본 TV 광고 모델로까지 등장하는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그녀는 재즈보다는 팝에 경도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예상치 못한 행보를 보인다. 1995년 발표한 앨범 [Temptaion]은 톰 웨이츠 (Tom Waits) 의 곡을 커버한 것이었고, 1997년에 내놓은 [Dark Dear Heart]에서는 비틀즈, 쉐릴 크로우, 조니 미첼의 곡들을 담았다. 이러한 그녀의 시도에 대해 다소의 논란은 있지만, 재즈와 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새롭게 곡의 느낌을 전달해주었다는 면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이러한 그녀의 음악활동은 2000년대에 와서도 [Romantically Yours]를 발표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I can see clearly now that the rain is gone
난 지금 분명히 알 수 있어요 비가 그치고

I can see all obstacles in my way
내 앞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요

One are the dark clouds that had me blind
날 눈 멀게 했던 먹구름이 지나갔어요.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곧,?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Yes I can make it now that the pain is gone
난 지금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통이 사라졌어요

All of the bad feeling have disappeared
모든 나쁜 감정들이 사라져 버렸어요

Here is the rainbow I've been waiting for
여기에 내가 기도해 왔던 무지개가 있어요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곧,?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Look all around there's nothing but blue skies
주위를 둘러 봐요. 단지 푸른하늘 밖에 없어요

Look straight ahead there's nothing but blue skies
머리 위를 올려다 봐요. 단지 푸른하늘 뿐이죠

I can see clearly now that the rain is gone
난 지금 분명히 알 수 있어요, 비가 그치고

I can see all obstacles in my way
내 앞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요

Here is the rainbow I've been waiting for
날 눈 멀게했던 먹구름이 지나갔어요

It's gonna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곧,?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be a bright, bright sun-shining day
밝고 밝은 해가 떠오를 거예요

 


캐나다 출신의 홀리 콜 (Holly Cole) 은 재즈와 팝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자기 영역을 구축해 온 여성 재즈싱어이다.

저음에서 고음의 성부까지 유유히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그녀의 창법은 흡사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와
도 유사하나, 스탠다드 재즈만을 고집하지 않고

 'Calling You' 같은 팝 발라드 넘버들도 그녀의 중요 레퍼토리로 삼았다.

 

그런 그녀의 음악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특히 일본에서 그녀의 인기는 매우 특별하다.
홀리 콜은 1963년 캐나다의 할리팩스 (Halifax) 시에서

방송국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에 있어서 음악은 마치 일상과도 같은 것이어서

어려서부터 음악교육을 받고 자라났는데,

정작 홀리 콜은 성장해가면서 점점 거칠고

험악한 말괄량이 소녀로 변해갔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생활이 변하게 된 것은 부모가 이혼하던 14살부터였다.

 

항상 음악이 흘러넘치던 행복한 가정이 깨지자,

그녀는 점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 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17살이 되던 해,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던 오빠를 찾아가면서


그녀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라 본 (Sarah Vaughan) 같은

재즈 싱어들의 노래를 듣게 되었고, 거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곳에 머무는 동안 오빠와 함께 보컬수업을 받았다.

 

그녀의 오빠는 전후 50년대 재즈에 심취해 있었는데

그와 함께 하면서 들었던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 등의 재즈곡들은

그녀의 깊고 풍부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음악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1983년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토론토로 간 그녀는

그곳에서 보컬수업을 받음과 동시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워나갔다.

점차 그 지역을 중심으로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할 무렵인

1985년 피아니스트 아론 데이비스 (Aaron Davis) 의 권유로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필치 (David Piltch) 가 여기에 참여하면서

 '홀리 콜 트리오 (Holly Cole Trio)' 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수년간 토론토를 중심으로 입지를 다져간 그룹은

1990년 첫 앨범 [Blame It on My Youth]를 발표하였다.

 

'If I Were A Bell', 'Honeysuckle Rose' 같은 스탠더드 팝의 고전들을

감성적인 팝 발라드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앨범은

재즈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론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어 발표한 2집 [Don't Smoke In Bed]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특이 이 앨범은 일본에서만 10만장이 넘게 팔려나갔고

일본에서의 각종 재즈 시상식을 휩쓸면서 일본 TV 광고 모델로까지 등장하는 인기를 누렸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그녀는 재즈보다는 팝에 경도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예상치 못한 행보를 보인다.

 

1995년 발표한 앨범 [Temptaion]은 톰 웨이츠 (Tom Waits) 의 곡을 커버한 것이었고,

1997년에 내놓은 [Dark Dear Heart]에서는

비틀즈, 쉐릴 크로우, 조니 미첼의 곡들을 담았다.

이러한 그녀의 시도에 대해 다소의 논란은 있지만,

재즈와 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새롭게 곡의 느낌을 전달해주었다는 면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이러한 그녀의 음악활동은 2000년대에 와서도

[Romantically Yours]를 발표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아티스트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Carpenters  (0) 2018.06.22
Keren Ann  (0) 2018.06.22
Sarah Vaughan 의 앨범 스토리   (0) 2018.06.22
Zombies  (0) 2018.06.22
Peter, Paul & Mary   (0) 2018.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