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에로스포
한국 포크의 교과서 ‘라나에로스포’의 역사
리더 한민(박윤기)은 단국고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배워 군복무를 마친 1968년, 종로 세기음악학원의 기타 강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 듀엣으로의 음악 활동을 위해 여성 파트너를 찾던 중, 같은 음악학원 출신 올갠 선생인 작곡가 김학송의 소개로 은희(김은희)를 만나 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라는 뜻의 이태리어)’를 결성하였다. 6개월 후인 1971년 1월 한국 포크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념비적인 데뷔음반을 발표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이미 첫 여성 파트너 은희는 미8군을 거쳐 주목받는 솔로 포크 가수로 독립한 뒤였다.
이때부터 라나에로스포의 파란만장한 멤버교체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두 번째 파트너는 2개월도 넘기지 못하고 독립해 나간 숙명여대 작곡과 출신 장여정. 세 번째는 예그린 합창단 단원이었던 최안순으로 그녀도 역시 2집 취입 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후 솔로로 독립한 최안순은 ‘산까치야’ 등을 히트시키며 은희에 버금가는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다. 네 번째는 “두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인사만 남기고 사라진 서울합창단 출신의 이경란. 다섯 번째는 동아 방송국 미모의 성우였던 오정선으로 역대 여성 파트너들 중 1년 6개월을 함께 한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노래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모자라서... 혼성 듀오는 결혼할 사이면 좋을 거 같다.”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결국 팀을 떠나고 만다.
1973년엔 TV드라마 ‘꿈나무’의 주제가를 불렀던 유리 씨스터즈의 강인원을 맞아, 그룹 피노키오의 리드 기타 권오진 등과 함께 5인조 포크 록 그룹 ‘Young & 라나에로스포’를 출범시키며 음악적은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잠시 동안 함께한 일곱 번째 파트너는 허니비 씨스터즈의 조성자. 여덟 번째는 ‘여고시절’등 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섹시한 음색의 배우 이애순이었는데 ‘고독’이란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하며 남대문프린스 살롱을 주 무대로 활동했지만 그녀 역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탈퇴를 선언.
너무 잦은 파트너의 교체로 남모르는 아픔을 겪어온 한민은 점괘를 보게 되고 ‘자신보다 작은 여자와 팀을 해야 오래 간다.’라는 결과를 얻어 처음으로 자신보다 작은 신장의 아홉 번째 파트너인 교회 성가대원 출신 유경숙을 맞이하지만 그 역시도 오래 가지 못했다. 열 번째와 열한 번째는 한민 자신조차 뚜렷한 기억이 없는 안혜숙과 하사와 병장 이동근의 소개로 만난 영등포 여고 출신의 윤수정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며 한민은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시도하고 음악 디렉터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2001년 초 긴 유학생활을 마친 뒤 안양의 한 라이브업소에서 김희진을 만나게 되니 그녀가 바로 열두 번째 파트너이다. 이들은 독집 CD를 발표하며 라나에로스포의 재기를 과시하며 올드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한민은 ‘함께 음악을 할 만 하면 솔로로 나가버려 괴로웠다.’며 ‘특히 혼성 듀엣이라 결별이유를 애정 문제로 바라보는 눈길이 더욱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예그린 출신의 최안순과 성우였던 오정선, 영화배우 이애순 등 수 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여복이 터진 행운아로 한민은 많은 남성들에게 부러움을 산 반면, 한편으로는 멤버가 교체될 때마다 구설수에 오르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회고하며 음악생활 내내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할 진정한 음악적 파트너를 원했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는 이 열 두 명의 여성 파트너 중에 초대 김은희와 3번째였던 최안순을 최고로 평가했다.
한국 포크의 교과서 “사랑해”의 주인공 <라나에로스포>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
훗날 ‘꽃반지 끼고’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은희와 1971년 1월 10일에 공식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이필원-박인희의 <뚜와에무와>와 함께 당시로서는 기성 가수들이 추구하던 전통가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트렌드인 포크의 붐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된 변혁 작사, 작곡의 ‘사랑해’는 당시 고등학교 교과과정에도 수록될 정도로 7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청바지와 통기타문화를 불러온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으며, 지금도 동창회나 석별의 모임에서 서로를 단합시키는 불멸의 연가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들의 대표곡이자 명곡. 아울러 이 노래에 얽힌 역사적인 일화도 있는데, 1972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최초의 남북적십자 회담 때 이범석 남측 수석대표와 김태희 북측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 남북 대표가 손을 잡고 합창한 최초의 노래가 ‘아리랑’이나 ‘우리의 소원’이 아닌 ‘사랑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포크음반이 미국의 포크나 컨트리음악을 번안하여 앨범에 삽입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다. 이 음반에서도 역시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스탠다드 넘버 ‘철새는 날아가고’와 ‘썸머와인’ 등이 수록 되어 있는데 두 사람의 아름다운 화음이 어우러지며 결코 원곡의 완성도에 뒤처지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앨범 전체적으로 마치 포크의 교본을 보는 듯 기본기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는 한민은 실험적인 시도도 병행하였는데 첫 번째 곡인 신중현 작사, 작곡 ‘상처 입은 사랑’의 싸이키델릭한 전개, C.C.R.이 불렀던 ‘Proud Mary'를 경음악으로 옮겨오면서 보여준 감각적인 기타 솔로 등은 그의 음악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또한 <뚜와에무와> 이필원의 장기가 하모니카라면 ‘썸머와인’과 ‘내 사랑 언제나’에서 들려준 특유의 휘파람소리는 그 후 한민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한편, 은희는 순수하면서도 매혹적인 독특한 음색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고 이 음반을 통해 은희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어 곧바로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이 음반은 라나에로스포 데뷔앨범의 재킷과 수록곡을 오리지널 그대로 복각한 음반으로 음악적인 완성도나 앨범의 역사성 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출시되는 표준화된 고음질의 CD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시의 열악한 장비와 녹음기술에 기인한 부분적인 음질의 아쉬움은 거부감이 들기 보다는 옛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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