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해설

리듬앤 블루스(R & B)

방살미 2018. 6. 21. 09:41


 색인종의 음악(race music)으로 불리다가 1949년 미국의 음반 업계지 빌보드에 의해 리듬앤블루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이 격렬한 흑인 샤우터 보컬과 저속한 노래말을 담은 음악은 흑인 라디오 방송에서는 인기를 얻었으나 백인라디오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내용으로 거의 금기시되었다. 행크 발라드의 [나랑 해요, 애니 Work with me Annie], 빌리 워드의 [60분의 남자 Sixty minute man]등이 그 예로, 이런 저속함은 50년대 중반 초기 로크롤에 해당하는 리틀 리처드의 [Long tall Sally] 같은 노래의 저속함에 이양되었다. 50년대 알앤비는 레이 찰스와 루쓰 브라운과 같은 보컬리스트와 드리프터스와 코스터스와 같은 보컬 그룹이 주도했다. R&B는 또한 로큰롤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일부는 R&B가 바로 로큰롤이었으며 백인 수용자를 위해 백인음악산업이 강탈해 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여하간에 R&B의 요소들은 다양한 록음악과 흑인음악 계열의 소울, 그리고 디스코와 휭크,랩으로 진화해 나간다.
 울은 R&B에 기초를 두고 60년대에 만개한 흑인음악이다. 본래 가스펠의 세속적인 형식으로서의 소울은 처음에는 재즈음악에서 재즈뮤지션과 청취자의 진정성에 부합하는 음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으나 50년대에 이르러 레이 찰스 같은 가스펠 스타일의 보컬 창법과 휭크 리듬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음악을 지칭하게 되고, 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의 붐과 더불어 흑인음악을 지배하는 용어로 부상한다. 디트로이트의 유명한 레이블 모타운의 활기차고 대중적인 혼 연주에서 스택스/볼트 레이블의 강직한 소울에 이르기까지 소울은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구럴릭은 소울을 “가스펠에 기초하는 덜 절제되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음악으로, 레이 찰스가 성공함에 따라 1954년경부터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60년대초 모타운과 함께 개화한 음악”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의 다양한 지역은 다양한 소울을 만들어 냈다.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서는 보컬에, 디트로이트에서는 작은 프로덕션에 집중되었다. 모타운은 가스펠, R&B, 그리고 로큰롤에 영향을 받은 대중적인 사운드에 주력했다.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오티스 레딩, 슬라이 스톤과 같은 거장들이 집중적으로 출현하며 소울은 60년대와 70년대의 흑인음악계를 지배했으며 종종 팝차트의 상위권을 석권하기도 했다.

 

 탠더드팝 그리고 로큰롤과 마찬가지로 리듬앤블루스와 소울은 60년대 미8군 무대를 통해 한국으로 이식되었다. 백인계열의 음악과는 달리 흑인 계열의 R&B는 흑인 군인들을 대상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신중현은 김추자와 박인수 그리고 송만수와 장현 같은 걸출한 보컬리스트들을 통해 한국 리듬앤블루스의 가능성을 순식간에 발휘한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로 이 흑인음악이 한국의 청중들과 다시 대규모로 조우하기 위해선 거의 이십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990년대 힙합과 레게 붐 속에서 그동안 비주류에 머물러 있었던 흑인음악 계열이 대거 주류로 돌아섰고, 세계적인 R&B 리바이벌 붐에 힘입어솔리드를 위시한 신예 그룹들이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90년대 세대의 가장 통속적인 음악 아이콘으로서의 위상을 정립시킨다. 90년대 후반 이후 트로트 진영을 제외하면 R&B의 스타일을 수용하지 않는 음반을 찾기가 더욱 힘들 정도로 흑인음악은 한국에서 대세를 점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