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뮤직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요즘, 과거에는 듣기 힘들었던 세계 각처의 음악들이 홍수
처럼 우리들 앞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소수의 매니아나 전문가들에게만 회자되었던 음악
들이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거의 무차별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월드뮤직이란
단어는 이제 그리 생경하고 신선한 의미가 아닌 듯 하다.
................................♬ DAY O ♪ JAMAICA FAREWELL.......................................
...................♪HAVA NAGEELA ♬MATILDA....................................................
월드뮤직, 혹은 월드비트(World Beat)란 단어는 사실 80년대부터 나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
다. 그러나 월드뮤직이란 단어자체는 상업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80년대에 슬며시 만들어진
것일지 몰라도 월드뮤직이 갖고 있는 의미는 우리가 알고있는 시대적인 흐름과 기억을 훨씬
뛰어넘어 이미 오래전에 대중음악의 도도한 역사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다. 엄밀
한 의미에서 재즈가 월드뮤직의 정수가 아니던가.
전라남도 정도의 크기의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마이카,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지난 92년에야
겨우 독립한 자마이카는 인구가 불과 300만명도 채 넘지 않는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이 작
은 섬나라는 풍부한 음악적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곳이다. 자마이카인들이 거의 우상숭배하
다시피하는 레게의 황제 밥 말 리가 그렇고, 밥 말리보다 훨씬 전에 자마이카를 세계인들에
게 알렸던 또 하나의 Super Entertainer 해리 벨라폰테가 바로 그렇다.(우리로 치면 인간문
화재급쯤 될까?)
해리 벨라폰테는 월드뮤직이란 말이 나오기 훨씬 전인 1950-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
었던 뮤지션, 아니 영화배우로, 가수로 심지어는 TV 프로듀서로 각종 연예장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팔방미인이었다. 스윙이 미 대륙을 지배하던 40년대, 벨라폰테는 카리브해의 정
서와 팝과 재즈가 한데 어울린 음악을 들고 나왔다. 이름하여 칼립소(Calypso). 칼립소란 서
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섬에서 생긴 흑인들의 노래로 그 기원은 서아프리카의 노동요에서 비
롯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역사상의 사건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을 부른
즉흥적인 노래인데, 트리니다드섬에서는 해마다 카니발 시즌에 칼립소콩쿠르가 개최되어 선
발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칼립소니언, 즉 직업적인 칼립소가수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콩쿠
르에서 우승한 사람은 1년 동안 ‘킹 오브 칼립소’의 칭호로 불린다. 이 칼립소는 1944년
'럼과 코카콜라'의 히트 등으로 해서 미국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칼립소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하나의 음악장르로 인정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해리 벨라폰테의 공이라고 얘기할수 있다.
1956년 해리 벨라폰테가 자메이카민요인 '바나나 보트송'(Banana Boat Song: 이 노래를 기
억못하는 사람들은 팀 버튼의 출세작 '비틀쥬스'(Beatle Juice)를 기억하라. 유령들이 합창
하는 그 노래!!)을 칼립소풍으로 불러 히트함으로써(당시 싱글차트 5위, 전미차트 앨범부문
31주간 1위) 그를 단지 카리브해 섬나라 출신의 흑인포크가수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를 특별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벨라폰테는 'Jamaica Farewell', 이스라엘 민요를 채보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멋지게
편곡한 'Hava Nageela', 서인도제도 민중들의 삶을 우화적으로 그렸던 'Mama look a Boo
Boo', 미국 인디언들의 전통민요인 Shenandoah' 그의 최대 히트작이라고 할수 있는
'Matilda, 서유석의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I do Adore her' 등등 주옥같
은 각국의 민요들을 스윙과 팝, 심지어는 컨추리적인 요소까지 차용하여 포크와 칼립소라는
맛난 요리를 대중들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역을 비단 음악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조안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등 당대의 포크뮤지션들과 더불어 반인종차별, 반전, 평화주의 운동에도 헌신하여
흑인과 소수민족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했으며 지금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발히 활동중에 있다. 더불어 수 많은 영화에서 빛나는
조연을 맡기도 하였고(그는 많은 영화출연을 하였다. 백인 위주의 헐리웃 관례상 주로 악역
을 맡았지만 그의 연기는 가수가 아닌 배우 해리 벨라폰테로서 인정하게끔 하는 충분한 능
력을 보여준다. 특히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캔사스시티'에서 암흑가 갱으로 분한 그의 연기
는 단연 압권이다) 뮤지컬 연출까지 맡는등 다재다능한 그의 능력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에서 소수민족 출신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보다 더욱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백인주류의 음악에 가려져 있던 소수민족의 음악을 발굴하여 단순한 소개로 그
치지 않고 메이저 음반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한 점, 각국의 월드뮤직의 스타들을 초대하여
미국의 음반시장에 끊임없이 소개하는 등 제3세계 음악발전에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우리에
게 잘 알려진 그리이스의 나나 무스쿠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리암 마케바 등은 해리 벨
라폰테가 발굴해 비로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경우다.
여기에 소개하는 해리 벨라폰테의 59년 카네기홀 공연실황 앨범은 라이브 앨범의 백미로 꼽
히는 명반중의 명반이다. 이틀간 펼쳐진 공연은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자선공연으로 원래 2장짜리 LP앨범이었지만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시켜 재생한 음반이다. 하지만 59년의 그때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 녹음 기술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앨범이기도 하다.(그래미상 베스트 엔지니어링상 수상)이 앨범의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마지막곡 'Matilda'이다. 라이브의 생생함과 가수와 관객간의 절묘한 호흡, 상호소통이란 측면에서 이 앨범은 대중뮤지션으로 관객에게 베풀어야할 덕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국내에도 알려져 70년대까지 음악다방과
라디오를 통해 줄기차게 들려졌던 바가 있다.
또한 전미차트 3위와 함께 무려 168주간 차트에 머무르며 기염을 토했던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40.50대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고전이지만 신세대 혹은 해리 벨라폰테의 매력을 모
르는 사람이라도 단 한 장의 이 음반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신선한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단돈 만원이 있다면 그리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망설이
고 있다면 오래도록 당신의 기억에서 간직할수 있는 감동 하나를 사길 바란다.
정말 운좋게도 당신 앞에 그 감동과 행복한 경험이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난 해리 벨라폰테와 더불어 서인도제도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유대인의 전설을 들으며 전혀 또 다른 즐거운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Belafonte At Carnegie Hall(1959) / Harry Belafonte
1927년 3월 1일, 뉴욕의 어두운 할렘가에서 해럴드 조지 벨라폰테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고향 자메이카에서 보냈다.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서인도 제도의 민요를 듣고 자란 그는 뉴욕으로 돌아간 뒤 1944년 미해군에 입대, 2차대전에 참전했고 제대한 뒤인 1949년에 처음으로 가수로서 뉴욕의 한 나이트 클럽 무대에 섰다.
1951년에는 포크 음악의 보금자리 '그리니치 빌리지'로 활동 무대를 옮겨서 칼립소 리듬으로 구전 민요와 현대 포크 뮤직의 조화를 시도해서 크게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칼립소는 원래 서인도 제도 중의 하나인 'Trinidad'섬의 민속 음악이었는데 차츰 '도미니카', '자메이카'등으로 퍼져나가 카리브해 전역에 유행했던 것이다. 칼립소 리듬으로 불려진 'Jamaica farewell'이 1956년 해리 벨라폰테의 노래로 처음 미국 인기차트에 오른 뒤'Banana boat song'등 불후의 명곡들이 그의 히트곡으로 계속 쏟아져 나왔고, 1959년 드디어 그 유명한 역사적인 카네기 홀 공연을 가졌던 것이다.
50년대의 카네기 홀은 그야말로 전세계 음악인들의 꿈이었다.지금은 그 보다 더 좋은 공연장이 많이 있고 지금의 카네기 홀은 오래전에 문을 닫은 채 새로운 출발을 위해 보수를 서두르고 있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 자리한 카네기 홀은 그 이름만으로도 음악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1959년 4월 19일과 20일 이틀간 카네기 홀에서 열린 해리 벨라폰테의 공연은 음악계의 커다란 화제거리였다. 이 공연실황은 2장짜리 앨범으로 만들어져 1959년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녹음상을 받았고 3년 뒤인 1961년에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전설적인 앨범이 되었다. 더구나 그 당시 벨라폰테가 카네기 홀 무대에서 거의 반주 없이 육성으로 공연을 이끌어 나갈 대 3천 관중이 그의 신명난 노래 속에 완전히 빨려 들었다는 현장 스케치 보도는 유명한 것이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Banana boat song'은 원제목이 'Day day light'로 자메이카 흑인 노예가 백인들로부터 어두운 밤 바나나를 나르는 일을 강요당할 때 부르던 노동요다. 그 당시 백인 농장주들은 외국으로 바나나를 실어 나르면서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 덥지 않은 한밤중에만 노예들에게 바나나 나르는 일을 시켰는데 그 고통은 말이 아니었고 그래서 노예들은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 Day-O'라고 외치며 노래했다고 전해진다.
'Jamaica farewell'역시 해리 벨라폰테가 1957년에 불러 히트시킨 노래로 자메이카의 민요 'Iron bar'를 개작한 것인데, 자메이카 여인과의 슬픈 이별을 그린 노래다.
'Come back Liza' 역시 자메이카의 민요로 부제가 'Water come me eye'로 아리따운 여인 라이자를 떠나보내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감정을 클래시컬하게 표현한 노래다.
이 앨범 중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60년대 초 가장 사랑 받았던 노래가 Matilda이다. Harry Thomas가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칼립소 리듬으로 불려진 대표적인 노래다 '마틸다는 돈을 가지고 베네주엘라로 도망쳐 버렸네..'라는 가사가 조금은 코믹하게 느껴지는 이 노래는 1953년에 역시 해리 벨라폰테가 레코드로 낸 곡이다. 가사 중에 나오는 마틸다가 훔쳐 달아난 500달러는 그 옛날 화폐가치로 집과 땅을 사고도 남는 돈이어서 50년대초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매우 흥미를 자극시켰다.
'Mama look a boo boo'는 1956년 트리니다드 섬에서 열린 캐러비언 콩쿨에서 2위에 입상한 곡으로 원제목은 'Boo Boo Man'이다.
Banana Boat Song - Harry Belafonte 작사 : Lord Burgess 작곡 : William Attaway 편곡 : Unknown Day-o,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Work all night on a drink of rum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Stack banana till de morning come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Beautiful bunch of rip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Hide the deadly black tarantul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Lift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Six foot, seven foot, eight foot bunch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Come, Mister tally man, tally me banana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ay-ay-o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Day, me say day, me say day, me say day, Daylight come and me wan' go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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