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먼저 오래된 그리스 신화의 일부를 알아두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될듯하다.
올림포스 신들의 지배자,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신(천공의 신)으로 불리는
“제우스“(Zeus). 그는 엄청난 바람둥이(정력가)였던 모양이다.
정식부인이었던 “헤라“의 무서운 질투를 피해가면서 수많은 여신들과
관계를 가졌고 그것도 부족한지 인간 여성들과도 엄청 많은 관계를 맺어
수많은 씨들을 뿌려놓았는데,
“헤라클레스”,“헤르메스”,“디오니소스“,“헬레네“,“아르고스“등이
모두다 그의 자식들이며 “미노스”(Minos)또한 그의 아들(반신반인)이다.
“크레타“섬의 왕이 된 바로 이 ”미노스“에 관한 신화로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과 관련된 흰 숫소의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그가 낳은 딸(공주)중에는 바로 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인물,
“파이드라”(Phaedra/Faidra)가 있다.
“미노스”는 정략적인 이유로 아테네의 왕인 “테세우스”(Theseus)의 후처로
딸, “파이드라”를 보내게 되는데 기구하게도 “파이드라”는 전처소생인,
의붓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를 사랑하게 된다. 금지된 불륜의 사랑.
하지만 왕비의 불타오르는 정욕을 칼같이 거절하는 “히폴리투스”.
그러자 “파이드라”의 사랑은 증오로 변하고 그 복수심은 몹쓸 음모를 꾸미게 하여
끝내, “히폴리투스”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녀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966년에야 뒤늦게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미, 1958년서부터 실질적인 부부사이(위의 사진)였던
망명객, “Jules Dassin“(1911,미국)감독과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Melina Mercouri”(1920-1994)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저 예산 영화, 1960년의
“Never on Sunday"로 폭발적인 대성공을 거둔 이후,
(자세한 설명은 “Never on Sunday“의 리뷰에서)
다시 한 번, “Mercouri”의 고국의 “파이드라”의 신화를 근거로 2년 후,
새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Dassin“이 주인공으로 나서질 않고
대신 그동안 연기력을 검증받은 이태리출신의 “Raf Vallone”(1916-2002)과
또 “싸이코”(Psycho/1960)와 “굿바이 어게인”(Goodbye Again/1961)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미국 뉴욕출신의
“Anthony Perkins”(1932-1992)를 기용함으로서 탄탄한 배역도 볼거리로
내세웠는데 물론 히로인은 역시 “페드라“ 역의 “Melina Mercouri”이다.
그럼 전설 같은 이 신화를 바탕으로 제작과 감독까지 한 “Jules Dassin“은
어떻게 이 신화를 현대화를 하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스 해운업계에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한 야망의 사나이,
“타노스 크릴리스”(Thanos/Raf Vallone).
전통 있는 선박 왕 집안의 30대 초반 나이의 딸,
“페드라“(Phaedra/Melina Mercouri)와 정략적인
재혼을 해서 살고 있는데 런던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는 영국인 전처소생의 아들,
“알렉시스“(Alexis/Anthony Perkins)를 무척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업이 우선인 그는 “페드라”를 시켜 “알렉시스”를 빠리로 데려오라고
해놓고서는 상봉 몇 시간 만에 뉴욕으로 급히 출장을 가고 마는데,
런던에서 처음만난 이후부터 줄곧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이들은 밤비가 나리는
그 빠리에서 그만 정사를 나누고 만다. 그리고 이 비극적인 불륜의 사랑으로 서로
번민은 시작되고, 24살에 첫사랑을 경험한 “알렉시스“에게 그리스에는 절대 오지
말라고 하면서 헤어진 “페드라“는 그리스에서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함을 깨닫는다.
아들이 "My Girl"이라고 부르며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스포츠카까지
미리 준비를 해놓고 여름방학에 그를 그리스로 부른 “타노스”는 “알렉시스“에게는
사촌이 되는 “얼시“(Ercy/Elizabeth Ercy)와 결혼을 시켜 (사업적인)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하는데 이에 “페드라“는 불타오르는 질투심을 감출수가 없다.
그리고 날 내버려달라고 쌀쌀맞게 구는 “알렉시스“에게도 분노를 느끼며
이 모든 것이 다 망할 것 이다 라고 저주를 퍼붓는데, 공교롭게도 첫 장면에서
호화로운 진수식을 가진 “SS 페드라”호가 그만 이때 노르웨이 연안에서 난파를
당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을 한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페드라“는 사고 수습을
위해 정신이 없는 “타노스”의 사무실에서 난 “알렉시스“를 사랑한다고 폭탄선언 같은
고백을 하고 이에 분노한 “타노스”는 “알렉시스“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구타를 한다.
지난번 “Never on Sunday"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수상을 하였던
“Manos Hadjidakis“(1925-1994) 대신 그의 단짝친구였던
“Mikis Theodorakis“(1925, 그리스/ 아래사진)가
이번에는 OS 음악을 맡았는데, 음악적으로도 명장면으로 평가를 받는 지금부터의
이 영화의 끝부분은 영화 전체적으로도 역시 유명한 명장면으로 아직까지도 기억이
되고 있다.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온 “알렉시스“는 스포츠카를 후진하여 세워놓고
흐르는 수돗물에 (그냥 누운 채로) 상처 난 얼굴을 씻는다.
이때 또다시 흐르는 이 영화의 Love Theme.
“Mikis Theodorakis“가 만든 이 사랑의 Theme 곡은 영화의 Opening Credits
에서부터 빠리 에서의 정사장면을 비롯하여 그동안 여러 번 반복이 되었었지만
이별의 이 장면에서는 특히 더 구슬프고 애절하게 들린다.
“알렉시스“의 상처투성이 얼굴에다 자기얼굴을 갖다 대면서 날 같이 데려가 달라고
사정을 하는 “페드라“. 그러나, “알렉시스“는 다시는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서는 거칠게 차를 몰고 사라진다.
잠시 후, 침실에서 평소 아끼던 잠옷으로 갈아입은 “페드라“.
평생을 헌신적인 시종으로(동성애 상대?) 같이 지내던 “애나”가 눈가리개를 가지러
간 사이 수면제를 복용을 하고 다시는 깰 수 없는 깊은 잠으로 빠져 든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알렉시스“는 고속으로 지중해의 바닷가 도로를 질주하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차에게)큰소리로 독백과 절규를 한다.
차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장엄한)“바하“의 음악과 함께.....
“Go! Go! Go! That's My Girl........
너만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지. 음악이 듣고 싶어? 그래, 듣고 싶겠지....
추방당한자의 음악을 들려주지,
우린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호송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야.
오! “존 세바스챤 바하” 여!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잘 있거라, 바다여.(중략)
인정하자, 그녀는 날 사랑했었어... 옛날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오! “바하“ 여! 어디에 계신가요?
모두다 당신 음악에 미쳐있어요.
나도 그리스에서 당신을 듣고 있지요.
아버지를 죽이러 온 이 그리스.(중략)
아! 페드라!
페드라! 페드라!...........“(절규 +차의 급브레이크 소리)
이 기 가 막힌 장면에서 흐르는 “바하“의 파이프 올간 음악은 바로,
“Toccata and Fugue in F major, BWV 540“인데,
이 “바하“의 음악도 함께 수록이 된 OST에는
“Goodbye John Sebastian“이라는 제목도 붙었지만 역시 영화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음악과 함께 좁은 길을 고속질주를 하던 “알렉시스“의 "My Girl"은 앞서오는
트럭을 피하려다가 그만 절벽으로 추락을 한다. (이륜마차를 몰다 바다의 괴물에 놀라
절벽으로 추락하는 “히폴리투스”의 신화와 최대한 비슷하게 찍은 것 같고 또 이 차가
그리스 항구에 도착을 할 때 한 그리스 노인 역으로 출연한 “Jules Dassin” 이
꼭 "관과 같이 생겼다"는 말이 현실화 된 것이다. )
한편, “타노스”는 그 시간에 “SS 페드라”호 사고의 사망자들 명단을
몰려든 유족들 앞에서 한명 한명 발표를 하면서 이 비극의 막은 내리게 된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aino Feygei Stis Ochto"/위의 음악)라는
그리스 가요(노래:Agnes Baltsa)로도 또한 잘 알려진 “Mikis Theodorakis“는
“Never on Sunday"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Manos Hadjidakis“와 함께 현대
(20세기 중반) 그리스음악계의 아주 큰 기둥으로 오늘날 평가받고 있다.
“Theodorakis“는 이 영화에 이어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Bouzouki)의
매우 독특한 사운드로 1964년 작인 “Zorba, The Greek" 의 주제곡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그 시절의 군사정권 아래서 옥고를 치룬 적도 있었다.(좌익성향이라는 이유로
그의 음악들은 당시에 모두 금지곡이 되었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 나라의 역사도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1973년, “알 파치노“의 ”Serpico"라는 아름다운 미국 영화음악도 만들었지만,
오늘날 까지 약40여 편의 영화음악들을 만든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테마곡 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기념하는 오페라의 음악들도 만든바 있다.
(아래 사진은 최근의 그의 모습이다.)
[이 두 사람의 자세한 설명도 “Never on Sunday“의 리뷰에서]
같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블랙 코미디형식으로 만든 전작,
“Never on Sunday"와는 분위기가 180도 다른 이 작품에서 “Jules Dassin“은
비록 흑백이지만 빠리에서의 정사장면을 포함하여 (빗물이 흐르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찍은 명 장면) 여러 장면에서 무척이나 예술적인 영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듯하다. 지중해의 풍경 역시 일품이지만 절제된 줄거리 전개
(편집 포함)나 개성이 강한 음악하며, 198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중단한 “Dassin“과
또 부인, “Melina Mercouri”, 모두에게 생애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2002년에는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의 우리나라 영화도 개봉이 되었지만
정작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은 바로 이 영화가 1960년대 중반에 이미 한국어 제목
으로 사용을 하였는데 (비록 일본인 이 지었지만) 오늘날의 느낌으로도 상당히
잘 만든 제목인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 해진 이 비극적인 신화는 원래 그리스에
남아있는 벽화로부터 후세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이미 기원전(BC)서부터
벌써 연극으로는 공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대 때부터 문학적으로도 그리스 의
대표적인 비극이 된 이 신화는 15세기 때부터 유럽에 다시 널리 알려져 오다가
오늘날 까지도 “오이디푸스“신화 에 버금가는 서양연극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한편 이 신화를 근거로 1880년에 프랑스의 화가인 “카바넬”이 그린 그림(유채화/
위의 사진)은 아직까지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다.
김제건의 영화음악이야기 에서
'영화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Great Escape - Mitch Miller (영화음악) (0) | 2018.06.20 |
---|---|
형사 [Sinno Me Moro (죽도록 사랑하여) - Alida Chelli (아리다 켈리)] (0) | 2018.06.20 |
시실리안 (0) | 2018.06.20 |
원스 오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 (0) | 2018.06.20 |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1992) (0) | 2018.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