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해설

Peter,Paul & Mary

방살미 2018. 6. 22. 08:28




Peter,Paul & Mary

혼성 트리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는 존 바에즈(Joan Baez)와 더불어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포크로 밥 딜런(Bob Dylan)과 또 다른 형태의 포크 붐을 주도했다. 인권과 반전이라는 포크의 기본적 성향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멜로디와 화음, 맑고 서정적인 보컬에 있어 기존 팝 음악을 뛰어 넘었던 이들의 음악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le) 이전까지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룹으로 자리했다.

1950년대 말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피터 야로우(Peter Yarrow, 1938/03/31)는 이후 밥 딜런(Bob Dylan)과 밴드(The Band)의 매니저로 활약한 알버트 그로스맨(Albert Grossman)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을 계기로 초기 포크 리바이벌의 선구자 위버스(The Weavers)를 음악적 모델로 삼은 포크 그룹을 만들게 된다. 1961년 그로스맨의 주선 하에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던 폴 스투키(Full-name: Noel Paul Stooky, 1937/12/30)와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폴 스투키와 친구로 지내던 여성 보컬리스트 메리 트래버스(Mary Travers, 1936/11/09)가 가세하여 세 멤버의 이름을 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들의 그룹으로서의 출발은 순탄했다. 유능한 매니저를 둔 덕인지 데뷔와 동시에 메이저 레코드사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1962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Peter, Paul & Mary」를 내놓았고, 앨범은 이들은 물론 레코드사의 기대 역시 저버리지 않으며 그 해 전미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 성공을 거두었다. 커버 곡 위주로 활동을 해서인지 싱글은 앨범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If I Had a Hammer’가 싱글 차트 10위, 국내에서 이들의 대표 곡으로 자리하고 있는 ‘Lemmon Tree’가 차트 35위에 올랐으며, ‘500 Miles’,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Cruel War’ 등 곡 대부분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앨범의 성공으로 이들은 그 해 최우수 포크 부문과 최우수 팝 듀오/그룹 부문의 2개의 상을 차지했다. 데뷔 앨범의 큰 성공은 이들의 디스코그라피를 빠르게 늘어나게 하여 1963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두 장의 「Move」, 「In the Wind」 앨범 역시 각각 앨범 차트 2위, 1위에 오르며 거침 없는 인기 행진을 이었다. 「Move」에서는 한국 영화 「와니와 준하」에 조승우 테마로 사용되어 다시 한 번 애청 된 ‘Gone the Rainbow’, 포크의 전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명곡 ‘This Land Is Your Land’가 수록되어 있으며, ‘Puff (The Magic Dragon)’이 싱글 차트 2위의 성공을 거두었다. 「In the Wind」에서는 밥 딜런의 커버 곡이 인기를 주도해서 ‘Blowin in the Wind’가 이들의 버전으로 차트 2위에 올랐으며,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이 되는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도 차트 9위의 성공을 거두었다. 두 앨범의 성공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최우수 포크 상과 최우수 팝 듀오/그룹 상을 다시 한 번 안겨 주었다.

64년 라이브 앨범을 차트 4위에 올리며 엄청난 인기를 과시했던 이들은 65년 역시 두 장의 디스코그라피를 추가하며 인기를 이었다. 차트 11위에 오른 「See What Tomorrow Brings」에서는 ‘Early Mornin’ Rain’ 등의 곡이 인기를 얻었으며, 차트 8위에 오른 「A Song Will Rise」에서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언플러그드에서 부르기도 했던 블루스의 고전 ‘San Francisco Bay Blues’. ‘For Lovin’ Me’ 등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들의 인기는 점점 떨어져 이후 발매되는 앨범들은 모두 차트 10위 권 밖에 머물렀지만 아직도 그들에게 보내는 대중의 지지는 대단했다. 1966년 월남전의 배경 하에서 데뷔 앨범에 수록되었던 ‘Cruel War’가 다시 한 번 차트에 등장하며 인기를 얻었으며, 1967년 ‘I Dig Rock And Roll Music’이 탑10 진입에 성공 9위에 올랐다. 1969년 앨범 차트 12위에 오르며 선전한 「Peter, Paul And Mommy」 역시 그 성공을 이었고, 강한 느낌이 묻어나는 ‘Day Is Done’으로 시작된 인기 몰이를 존 덴버(John Denver)의 커버곡인 ‘Leaving on a Jet Plane’로 이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Peter, Paul And Mommy」의 성공에도 불구 1970년 이들은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한다.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메리, 야로우의 재혼, CCM으로 음악적 방향 전환을 원했던 스투키 등 하나의 그룹으로 활동하는 데 부담을 갖게 된 것이 해체 이유였다. 베스트 앨범을 전하며 이별을 전한 이후 스투키와 야로우는 이후 뮤지션으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나름대로의 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던 이들은 1978년 「Reunion」이라는 앨범을 선보이며 재결합을 선언했고, 이후 전성기 때와 같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변함 없는 결속력을 자랑하며 꾸준히 활동해 나가고 있다.

글/아시아뮤직넷 이용지(rodydwl@asiamusic.net)




Peter, Paul and Mary - Blowing in th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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